[단독] 허술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 공정위 ‘호반 편법 승계’ 조사 외면

[언론 사유화 시도 호반건설그룹 대해부] 자산 5조원·총수가 직접 소유 지분만 규제
입력: ‘19-08-12 22:42 / 수정: ‘19-08-13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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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팔거나 자회사 설립 등 꼼수로 피해
법원, 부당성 입증 너무 높은 기준 적용도

“기준 강화·손자회사도 규제 대상에 포함
상장규칙에 내부거래·총수일가 보수 등
일반 주주들 과반수 찬성 의무화 도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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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열(왼쪽) 호반건설그룹 회장이 재벌 대기업의 편법 세습 과정을 답습해 김대헌(오른쪽) 호반건설 부사장에게 그룹 지배권을 넘겨줬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김 회장이 지난달 17일 서울 서초구 호반건설그룹 본사에서 열린 호반이노베이션허브 개소식에서 김 부사장과 함께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
대기업은 물론 중견기업의 총수들까지 2, 3세에게 일감 몰아주기로 편법 승계를 하고 있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상열(58) 호반건설그룹 회장이 재벌들의 승계 방식과 똑같은 수법으로 김대헌(31) 호반건설 부사장에게 자산 규모 8조 2000억원대의 그룹 지배권을 물려줬는데도 공정위가 조사 한 번 하지 않은 것이 대표적이다.

일감 몰아주기가 ‘부(富)의 대물림’을 가능하게 하는 유용한 수단이 되고 있는데도 이에 대한 규제가 제기능을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공정거래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대 시장과정부연구센터 김주현 박사는 12일 “김 회장의 세 자녀는 일감 몰아주기로 보유 자산을 크게 늘렸는데 애당초 일감 몰아주기를 재산 승계의 수단으로 추진한 것”이라면서 “하지만 현행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허점이 많아 오히려 총수 일가에 면죄부로 악용될 소지가 커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2014년 2월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도입했다. 재벌 총수들이 2, 3세에게 그룹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해 일감 몰아주기를 악용하는 사례가 점점 늘었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대기업이 총수 일가나 총수 일가가 일정 비율 이상 주식을 보유한 계열사에 정상적인 거래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거나 회사에 이익이 될 사업 기회를 제공하는 등의 방식으로 부당한 이익을 주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위반하면 공정위가 기업에 과징금을 매기고 회사나 총수 일가를 검찰에 고발할 수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서울대 시장과정부연구센터는 ▲일정 규모 이상 대기업으로 제한 ▲총수 일가 직접 소유 지분율 기준 ▲‘부당성’ 입증에 대한 법원의 법률 해석 문제 등을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3대 한계로 지적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공시대상기업집단)에만 적용된다. 호반건설그룹은 2017년 9월에야 공시대상기업집단이 됐다. 호반건설그룹 계열사들이 2017년 이전에 김 부사장 등 김 회장의 세 자녀가 소유한 회사에 일감을 대거 몰아줬지만 공정위 감시망에서 벗어나 있었고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던 이유다.

총수 일가가 개인 명의로 소유한 지분만 규제 기준으로 삼는 점도 문제다. 현행법에서는 총수 일가의 직접 지분율이 30%(비상장사는 20%) 이상인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만 규제한다. 총수 일가가 주식을 팔아 지분율을 규제 기준 밑으로 살짝 낮추거나 자회사를 세운 뒤 자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수법으로 얼마든지 규제를 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총수 일가가 A사(상장사)의 주식을 팔아 직접 지분율을 40%에서 29.99%로 낮추거나, A사의 자회사인 B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식이다. 실제 현대자동차그룹은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등 총수 일가가 보유한 현대글로비스와 이노션의 지분율을 일감 몰아주기 규제 시행 이후 29.99%로 낮췄다. 삼성에버랜드도 급식사업부문을 떼어내 100% 자회사인 삼성웰스토리를 세워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줬다. 홍명수 명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총수 일가의 직접 지분율 기준을 상장사도 20%로 낮추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데 빨리 통과돼야 한다”면서 “법망을 피해가는 손자회사들도 규제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안별로 달라지는 법원의 해석도 문제다. 2017년 한진그룹 일감 몰아주기 과징금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법원이 한진의 손을 들어 준 것이 대표적이다. 공정위는 2016년 대한항공이 계열사인 싸이버스카이와 유니컨버스에 일감을 몰아줘 총수 일가에 부당 이익을 제공한 혐의를 포착, 대한항공에 과징금 14억 3000만원을 매기고 대한항공과 조원태 부사장을 고발했다. 하지만 이듬해 서울고법은 경제력 집중을 유지·강화할 수준의 일감 몰아주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공정위가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결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법원은 한진 총수 일가가 일감 몰아주기로 얻은 부당 이득을 적게 계산했고 이 정도 금액을 부당 이득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면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법 적용 기간이 짧아 부당 이득 금액이 적은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런 식이면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호영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법원이 일감 몰아주기의 부당성 입증에 너무 높은 기준을 적용하면서 입법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대안으로 상법이나 한국거래소 상장 규칙에 ‘엠오엠(MoM·Majority of Minority·비지배주주 다수동의권)룰’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내부거래나 계열사 합병, 총수 일가 보수 등은 주주총회에서 총수 일가를 비롯한 특수관계자를 뺀 나머지 주주들로부터 과반수 찬성을 얻도록 하는 제도다. 이스라엘은 2011년, 인도는 2013년 도입해 상당한 효과를 거뒀다. 김 박사는 “이스라엘에서는 제도 도입 전보다 총수 일가 보수가 7~10% 줄었고 인도에서는 상장 대기업 내부거래 규모가 8%가량 감소했다”면서 “거래소 상장 규칙은 입법 과정을 거치지 않고 빠르게 제도 도입이 가능하고 상법에 도입하면 상장사뿐 아니라 비상장사에도 적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글 사진 특별취재팀 hobanjeb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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