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전 이사회, ‘여름 누진제 완화’ 배임 지적에 결정 보류

입력: ‘19-06-21 17:44 / 수정: ‘19-06-2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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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전 아트센터에서 한국전력 이사들이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을 다룰 한국전력 이사회’가 개의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2019.6.21 연합뉴스
국내 로펌 2곳 ‘누진제 의결 때 배임’ 의견 제시
‘누진제 완화 다음달 시행’ 정부 계획 ‘빨간불’

한국전력 이사회가 21일 여름철 전기요금 부담을 한시 완화해주는 누진제 개편안을 보류시켰다. ‘개편안을 통과시킬 경우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의견을 로펌이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사회는 개편안에 대해 조만간 다시 논의하겠다고 밝혔지만 7월에 개편을 단행하겠다는 정부 계획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한전은 이날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이사회(의장 김태유 서울대 교수)를 열고 민관 태스크포스(TF)가 제시한 전기요금 개편 최종 권고안을 토대로 심의를 진행했으나 약관 반영 보류 결정을 했다.

한전은 “이사회에서 전기요금 누진제 관련 기본공급약관 개정안은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아 의결을 보류하고 조만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사회는 김종갑 사장 등 상임이사 7명과 김태유 서울대 공과대학 명예교수(이사회 의장) 등 비상임이사 8명으로 구성돼 있다. 한전은 최근 국내 대형로펌 2곳에 누진제 개편안 의결이 배임 가능성이 있는지, 소액주주들이 이사회를 상대로 소송을 걸 경우 승소 가능성과 이를 임원 배상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 등의 여부에 대한 법률검토를 의뢰했다. 개편안 결과 한전이 3000억원 가까운 비용을 대신 부담해야 하고, 이에 따라 한전 소액주주들은 개편안이 의결될 경우 경영진을 배임 행위로 고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사회에 참석한 한 비상임 사외이사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날 회의에서 로펌으로부터 개편안 의결에 대해 배임 소지가 있다는 결론을 통보받았다”면서 “이사진들은 ‘현재 갖고 있는 정보로는 당장 의결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사외이사는 “여름철에 일반 국민들이 냉방기기를 사용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데에는 이사진 모두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한전 경영진과 사외이사들 모두 한전이 그에 따른 비용을 모두 떠안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동의했고, 지금 그 방법을 찾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 사외이사도 “누진제 개편은 ‘전반적인 전기요금 체계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라는 큰 틀에서 논의가 진행되는 게 바람직하다. 이를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전했다.

앞서 민관합동 전기요금 누진제 TF는 여름철 누진 구간을 확장해 한시적으로 전기요금 부담을 줄여주는 안을 최종 권고안으로 내놓았다. 2018년 사용량 기준으로 1629만 가구가 월 1만 142원의 할인 혜택을 받게 된다. 그러나 한전이 추가로 2847억원의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는 게 문제로 지적됐다.

적자에 허덕이는 한전이 전기요금 인하에 따른 비용부담까지 지게 되면 경영여건이 더 악화될 수 있다. 한전은 지난해 2080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6년 만에 적자로 돌아선 데 이어 올 1분기에도 629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한시 할인 때에는 한전이 약 3000억원의 비용을 부담했다. 정부는 지난해에도 한전에 대한 지원방안을 추진했지만 해당 예산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한전은 이사회에 앞서 정부에 ‘명시적 손실 보전을 약속하지 않으면 누진제 개편안에 반대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요금 개편안이 이사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당초 다음주 전기위원회 심의 및 인가를 거쳐 다음달부터 누진제 개편안을 시행하려던 정부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산업부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8월 초에 결정해 7월까지 소급적용을 한 만큼 이번에도 의결만 된다면 다음달부터 시행하는 데 문제는 없다”면서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아예 한전의 요금 체계가 바뀌는 만큼, 국회도 이상기온 상시화에 대비해 한전 재정지원에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한전이 흑자였을 때에는 누진제 개편의 비용을 한전이 부담하는 데 대해 주주들이 배임 여부를 문제 삼지 않겠지만 적자인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면서 “전력요금 중 일반 원가와 정책 비용을 구분하고, 정책 비용은 정부가 보전해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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