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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식량안보, 종자(種子)에서 출발한다/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특별기고] 식량안보, 종자(種子)에서 출발한다/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입력 2020-09-24 17:12
업데이트 2020-09-2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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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투탕카멘 완두콩. 3300년 전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투탕카멘의 왕묘에서 출토된 완두콩을 종자로 해서 증식 보급한 보랏빛 완두콩이다. 지난 2007년 우리나라 산림청(국립수목원)도 증식에 성공해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완두콩 원종(原種)을 가졌다는 보도로 떠들썩했다. 종자 생명력의 신비성, 엄청난 시간과 공간 격차를 메우는 생명공학 수준, 그를 활용한 새로운 종자 개발 가능성 등 많은 것을 시사한다.

포스트 코로나, 기후변화, 디지털혁명, 스마트농업. 요즈음 많이 듣는 말이다. 팬데믹이 초래한 뉴노멀 시대, 자연과 산업 환경의 급변, 그리고 식량안보 산업인 농업의 진로를 표현하는 말이다. 그런데 모든 변화에 대한 농업부문 대응은 종자 개발·확보가 시작이자 끝이다. 최근 세계 종자 시장 재편과 그 가운데 벌이는 다국적 종자 기업들의 사활을 건 경쟁, 종자 소비 대국 중국과 종자 선진국 네덜란드의 국가적 대응 등은 종자 개발·확보의 중요성과 의미를 말한다.

우선 세계 종자 시장과 다국적 기업은 독과점 구조를 심화한다. 바이엘의 세계 최강 종자 기업 몬산토 인수·합병은 그 신호탄이다. 중국은 국영 화학기업 중국화공(캠차이나)을 내세워 스위스 다국적 농약·종자 기업 신젠타를 인수했다. 거대인구의 식량안보 확보를 위해 이미 완성된 세계 농업기업 인수라는 중국 농업 부문 해외 진출 전략의 대표적 사례이다. 네덜란드는 종자 산업을 국부창출 기반 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목적으로 정부와 민간이 어우러진 가장 모범적인 종자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채소원예작물, 식량작물, 구근화훼작물로 구분한 품목별 정부 검역시스템 완비, 적정 위치에 산·학·연이 유기적으로 연계된 품목별 종자단지(시드밸리) 조성, 국제기구와 세계시장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종자산업협회(플란텀) 구축 등은 네덜란드를 세계 종자산업 질서 주도국으로 끌어 올린다.

한국 종자산업을 말할 때 국내 굴지의 종자 기업 다수가 해외 기업에 인수·합병되었던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시 토종 종자의 종주권을 우려할 만큼 국내 종자산업은 초토가 됐다. 긴 힘든 시간을 거쳐 정부와 민간의 노력으로 국내 종자 시장 60% 정도를 국내기업이 회복한 상태이다. 정부의 장기 지속적 정책 시행이 민간을 유인하여 이 정도까지 회복했다. 정책이 보여준 희망이다. 이 희망을 부른 대표적 정부 정책은 전략품종 종자의 국산화율 제고와 국산 종자의 수출을 지향한‘골든시드 프로젝트’(2012~2021년)와 생명공학과 연계된 육종 원천기술 확보를 추구한‘차세대 바이오그린21 사업’(2011~2020년)이다.

그러나 국내 종자산업 내용을 보면 여전히 영세성을 면하지 못한다. 소규모 다품종 생산이 불가피한 국내 종자시장에서 다국적 기업이 경제성 문제로 포기한 틈새 영역을 개인 육종가 또는 소규모 개인 기업이 파고들어 어느 정도 국내 시장을 회복한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기후변화, 디지털혁명, 스마트농업 등을 대비하며 세계무대에서 경쟁을 펼쳐 확고한 종자주권 회복을 통한 식량안보 기반 마련에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새롭게 대두하는 국내 또는 글로벌 차원의 다양한 시대적 문제에 우리 종자산업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국가적 종자 사업의 시행이 필요하다. 특히 기존 생명공학기술에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융·복합된‘디지털 육종기술’기반 종자 개발 사업이 절실한 때이다. 향후 종자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디지털 육종기술’기반 종자 개발에 선진국은 이미 상업화 단계에 진입했으나 한국은 아직 실용화 초기 단계에 있다. 아울러 새로운 국가적 종자 사업은 연구개발뿐만 아니라 정부와 민간, 종자 관련 산·학·연이 함께 하는 네덜란드 유형의 종자 생태계 구축까지 사업 내용에 포함해야 할 것이다. 네덜란드 종자산업 생태계는 우리에게 중요한 푯대를 제공한다.
2020-09-25 3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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